신이 만든 산으로 숭앙되어온 중국인의 영산(太山:타이샨)

2007. 12. 5. 09:20중국/중국 동부 트레킹

신이 만든 산으로 숭앙되어온 중국인의 영산(太山:타이샨)

 

 


중국 오악(五岳)의 첫 번째인 태산(太山)은 옛부터 영혼이 깃든 산이라 여겨져 중국인들에게 숭앙되고 있을뿐 아니라 고대 제왕이 봉선의식을 행한 신성한 산이다.

해발 약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 최고 높은 산으로 산동성 동부·제남시·태안 등 3개 현 사이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또 7000개의 돌계단이 정상까지 놓여 있고,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9km정도의 거리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6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비석과 묘당을 볼 수 있다.

 

태산 오르기

4월부터 11월이 이곳을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산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5월1일 노동절과 10월1일 국경절에는 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비가온후에는 상 정상에서 운해를 쉽게 볼 수가 있는데,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태산의 등산 코스는 4가지가 있는데, 전통적이면서 일반적인 코스는 홍문로(紅門路)를 이용하는 두번째 코스로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홍문은 태산의 입구가 되는 곳으로 옛날에는 도교의 신상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측백나무로 뒤덮힌 울창한 숲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중턱의 中天門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중천문은 천외촌(天外村)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올 수 있는 곳으로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버스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다. 또 이곳에는 식당과 상점이 많이 있으므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다시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도보로 갈 경우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오르면 약 2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남천문을 정점으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이 이어져 이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남천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승선방(昇仙坊)이 있고, 여기서 20분 정도 오르면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에 도착한다.
태산등정은 2일의 일정이 가장 좋다. 밤 늦게 출발해 바로 일출을 보고 내려오거나, 오전에 출발해 산 위에서 하루를 머물고 일출을 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산위에는 10여개의 호텔들이 있다.

 

고차박물관
말과 마차의 순장 박물관이다. 지하로 들어가면 많은 전시물들이 있다. 고속도로 공사 도중에 발견되어 개발되었으며, 발견된 장소 그대로를 보존하여 천장의 높이가 2m보다 조금 높다.

말에게 술을 먹여 쓰러지게 한 다음 마차와 함께 매장을 하였다고 한다.


 
공자와 유가사상의 고향, 곡부(曲阜, 취푸)
곡부(曲阜)는 중국 산동성 중남부에 위치한 5천년 문명의 역사와 문물, 유적을 가진 특색있는 관광도시이면서 역사도시다. 이곳은 또한 세계적인 사상가인 공자(孔子)의 고향으로 유명한데, 공자의 사당과 공자의 묘가 이곳에 있다.
북으로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서 160km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제녕에서 45km 떨어져 있다. 이곳은 공자의 고향이라는 꼬리표 덕에 중국 관광도시 40위에 들 정도로 관광도시로서 각광받고 있다. 공묘(孔廟)와 공림(孔林),

공부(孔府)는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이곳을 대표하는 중요한 관광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묘와 북경의 고궁, 하북의 승덕피서산장은 중국 3대 고대 건축군으로 알려져 있고, 또 공묘의 대성전과 북경 고궁의 태화전, 태안의 천전은 중국 3대 전(殿)으로 분류되어 있다. 공묘 동쪽 옆에 있는 공부 역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큰 봉건유족장원이며 공림도 중국 최대의 인조원림이면서 역사가 오래된 가족묘지다.
곡부는 이 3공(孔)외에도 수많은 명승고적이 있다. 이곳이 공자의 고향이라는 말은 곧 유가사상의 고향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가사상가들을 사당과 사원이 있으며, 태산을 북으로 가까이 하고 있는 지리여건상 자연경관도 문화유적 못지않게 많이 있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의 사당, 공묘(孔廟:궁미아오)
북경의 고궁, 대만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건축이라 불리는 공묘는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춘추시대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를 제사지내는 곳인 이곳은 처음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던 행단에 대성전(大成殿)을 세운것으로 시작해 그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는 명청대에 완성된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크고 작은 여러개의 공묘가 있지만 이곳 곡부의 공묘는 공자의 고향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전체의 길이가 약 1㎞ 남짓하며, 면적은 약 22만㎡로서 전체 건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대성문을 기준으로 동, 서, 중삼로로 나뉘며 공묘의 사방에는 붉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공묘의 제일 처음에 보이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은 명대 건축물로 사근팔각의 연화모양의 정상에는 길함을 상징하는 동물이 새겨져 있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에 이은 제 2의 대건축으로 높이 24.8m, 폭 45.7m, 길이가 24.9m이다. 전내 중앙의 금박 입힌 신주를 모시는 곳에는 공자의 소상(塑像)이 안치되어 있고 양 옆에는 제자와 후대의 유가 16체의 소상이 있다. 또 28개의 돌기둥 가운데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기둥을 휘감은 듯한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성전의 바로 뒤에 있는 침전(寢殿)은 공자의 부인인 올관씨(兀官氏)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북송 때 창건한 것이며 청대에 개축한 것이다. 침전의 바로 뒤에는 공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적전(聖迹殿)이 세워져 있는데, 이 안에는 공자일생을 소개하는 석각화 120장과 공자화상이 모여있으며, 그 중의 하나인 '공자행교상'은 진대의 화가인 고개자(顧愾子)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공자의 가문이 거주하던 장원, 공부(孔府)
공묘의 오른편에 위치한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장원으로 1038년에 세워졌다. 공부는 또 연성공부(衍聖孔府)라고도 불리며, 현재의 모습은 명,청 양대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이곳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며 서로(西路)에는 객실, 동로(東路)에는 공씨가문의 묘지가 있고, 중로(中路)에는 전반부의 관공서와 후반부의 주택과 화원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면적은 16만㎡에 이르며 방은 463개나 될 정도로 광대하고 화려한 장원으로 당시 공씨 가문의 권력과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공부의 관아(官衙)는 삼당(대당, 이당, 삼당)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연성공이 공무를 집행했던 관서로 육정은 연성공부의 집실기구다. 대당은 중앙의 난각안에 있는데, 연성공이 중요한 의식을 행하거나 정부의 관리들을 맞던 곳이다. 이당은 5개의 방으로 되어있고, 공문을 받고 발송하거나 연성공을 거들던 관원의 집무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삼당은 이당의 뒤에 있는데 가족내부의 일들을 처리하던 곳으로 동쪽의 방은 손님을 접대하던 객실로 청대말기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내택문(內宅門)은 공부의 앞뒤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연성공이 놀던 내택과 관아를 구분짓는 금문(禁門)이기도 하다. 내택문내에는 영벽(影壁)과 가족의 윗어른 및 처녀들이 살던 전당루, 후당루, 내택의 뒤에 있으면서 '철산원(鐵山園)'이라고도 불리는 수화원이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 관람할 수 있으며, 제일 안쪽의 정원에는 공자가문을 소개한 자료관이 마련되어 있다.

 

공자와 공자가의 묘림, 공림(孔林, 콩린)

곡부의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공자와 그 자손들이 묻힌 묘소다. 이 곳의 묘가 약 2만기, 담장둘레만 7.25km로 세계최대의 씨족묘지이라 할 수 있다. 곡부시의 북쪽을 따라 1km 정도 숲길을 지나면 '지성림(至聖林)'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림의 대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공림이 시작되는데, 공림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묘비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림의 정문인 지성림방(至聖林坊)이 있고 여기서부터 이림문(二林門)까지 떡갈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다시 이림문에서 왼족으로 가면 수수교가 있고 이 다리의 북쪽, 숲 가운데로 들어가면 공자축제시에 향단을 설치하는 곳인 향전(享殿)이 있다. 이곳은 또 해방전쟁 당시, 중국의 군사지도자였던 주덕(朱德) 총사령관이 중요한 군사회의를 연 곳이기도 하다.


공자의 분묘는 향전 뒷쪽에 있는데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씌어져 있다.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고, 돌보지 않은 듯 풀이 우거져 있으며 무덤 가운데 거목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묘를 돌보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대 사상가인 공자의 무덤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신념때문이다. 또 공자의 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 묘(鯉)의 무덤이 있으며, 그 앞쪽에 공자의 학문을 계승한 손자 자사(子思)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같은 묘의 배치는 공자가 아들을 데리고 손자를 앉아주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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