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는 말레이 반도의 11개 주와 보르네오(Borneo) 섬 북부에 있는 사바 주(Sabah), 사라왁 주(Sarawak)를 포함하여 총 13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키나발루 산은 사바 주에 위치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95m의 키나발루 산을 중심으로 한 7만5,730ha 면적은 1964년에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으며 다양한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어 2000년도에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하였다. 키나발루 산은 저지대 열대림대, 산악우림대, 고산산악림대, 준알프스산림대 등으로 해발대에 따라 다양한 식생대가 나타나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발루 국립공원에는 다양한 식생대가 나타나고 다양한 식물 종들이 자라고 있지만 열대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식물들이 상록식물이며 이중 열대지역에서는 자라지 않는 침엽수종도 다수 있다. 침엽수에 해당되는 아라우카리아(Araucaria), 아가티스(Agathis), 다크리디움(Dacrydium), 다크리카프스(Dacrycarpus), 필로클라두아(Phyllocladua) 등이 있는데 이 종들 일부는 우리나라에서도 더러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다. 아라우카리아는 이 수종을 처음 발견한 지역이 칠레의 Araucanos이어서 이름이 유래가 되었으며 여러 종이 있는데 Hoop Pine, Norfolk Island pine 등으로 실제로는 소나무가 아니지만 소나무로 불리고 있다. 이 지역 특산종이 많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종들도 많지만 특히 식충식물과 난 종류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다.
키나발루 국립공원은 이와 같이 다양한 생물종들이 서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특별히 공원의 산악가이드가 등산객을 인도하게 하여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있다. 산악가이드가 없으면 등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등산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등산객이 1명이더라도 산악가이드가 동행을 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등산객의 숫자가 제한된다.
열대산악우림(Cloud Forest)은 공중습도가 높고 비가 많은 열대지역의 숲으로 침·활엽상록수가 대부분이다. 키나발루 산에서는 해발 1,200m에서 2,300m 사이에 분포하고 있으며 보통 산으로 올라오는 입구에서부터 볼 수가 있다. 특히 국립공원 내 메실라우(Mesilau) 지역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산악우림은 그 입구에서부터 열대림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열대림의 나무 높이가 보통 40∼50m를 이루고 그 굵기도 1m가 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크기를 견디기 위해 기저부는 마치 부챗살을 펼쳐놓은 것 같은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산 입구를 출발하면 급경사의 길이 나타나는데 아래쪽 계곡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 자라고 있지만 숲속은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숲의 위아래 전체가 푸른색으로 덮여 있는 것은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계곡부는 딥테로캅(Dipterocarp), 라우라세아(Lauracea), 너도밤나무류(Fagacea) 등의 상록활엽수와 아가티스, 아라우카리아 등 침엽수들이 주로 자라고 있다. 딥테로캅에 속하는 쇼레아는 우리나라에도 열대지역 수입목으로, 아가티스는 다마(dammar), 카우리(kauri)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렇게 열대림을 지나다 보면 나무줄기 전부가 이끼로 덮여 있는 높이 40m나 되는 나무들이 나타나고 나무줄기 중간에 마치 난초잎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들이 있다. 이것은 새집 고사리(Bird nest fern)라는 양치류에 속하는 식물로 나무줄기나 가지에 자라는 모양이 새둥지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여겨지며, 여러 종류 중 많이 알려진 것으로 아스프레니움(Asplenium)종이 있다. 공중습도가 높기 때문에 이와 같은 허공에서의 생육이 가능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활엽수 대경목의 줄기에는 이끼가 자라는데 줄기의 일부에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줄기 전체를 뒤덮고 있어 마치 이끼나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길가에는 우리나라 낙엽송 치수처럼 보이는 다우소니아(Dawsonia) 이끼가 다소곳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산록부와 계곡부는 푸른 이끼, 고사리류와 아가티스, 딥테로캅(쇼레아 등)이 하늘을 찌를 듯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고사리, 목련(Magnolia) 그리고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계곡에는 흐르는 물의 양은 많지 않지만 수변부의 바위들에는 이끼가 무성하게 끼어 있고 나무줄기 아래로 덩굴식물들이 줄을 지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길 주변에는 햇빛이 아래까지 들어와서인지 붉은빛 꽃들이 피어 있고 철쭉꽃도 하늘을 향해 피어 있어 초록과 붉은색이 숲을 수놓은 것처럼 보인다.
울창하고 초록으로 가득 찬 계곡부를 거쳐 능선부에 도달하면 숲 모양이 급격히 바뀐다. 능선부로 가까워지면 나무의 크기가 갑자기 작아져 거인국에서 소인국으로 들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능선부에 자라는 나무들은 2∼3m 정도로 크고 굵기도 10cm 내외로 관목처럼 보이는데 원래 이 나무들이 작은 것이 아니라 해발이 높아지고 능선부의 조건이 좋지 않아 관목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들의 가지에는 하얀색의 지의류들이 솜뭉치처럼 자라고 마치 눈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지의류가 자라고 있는 나무는 침엽수종인 아가티스류로 잎이 밝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반면 아가티스나무 사이로 자라는 렙포스페르문(Leptospermum)은 갈색빛 잎에 하얀꽃을 피우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며 능선부를 뒤덮고 있다. 특히 안개 속에 보이는 능선부 숲의 모습은 왜 이 숲들이 산악우림이라고 불리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능선부를 지나 안부 쪽으로 가다보면 길이 다시 평평해지면서 주위에 갈색 이끼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길 옆이 모두 이끼로 덮여 있어 마치 갈색 장막을 친 길을 걷는 듯하다. 이렇게 이끼가 무성한 길을 가다가 햇빛이 드는 길 옆을 자세히 보면 복주머니처럼 생긴 식물이 있는데 이 식물들은 식충식물인 Nephenthes이다. 복주머니 위에는 넙적한 뚜껑이 달려 있는데 이 주머니 안으로 곤충이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고 식충식물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숲을 지나면 숲이 다시 무성해지면서 마그놀리아(Magnolia) 숲이 나타나는데 이 숲 역시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서 이끼 숲으로 보일 정도이다. 마그놀리아 숲을 지나면 Layang Layang(Place of Swallows)이라 불리는 지점에 도달하는데 이 지점은 해발 2,600m로 산악우림을 지나 열대 고지대 산악림이 나타난다.
키나발루의 산악우림은 아직도 학술연구가 진행이 되는 곳으로 앞으로 다양한 생물종들이 새로이 발견될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열대수종과 온대수종의 특징을 가진 다양한 특산 수종들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자연자산의 보호를 위하여 출입을 금지시키지 않고 산악가이드제도를 활용 자연보호와 이용을 병행하고 시설을 최소화하여 자연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도 한번쯤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국립산림과학원 배상원 박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