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가 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다녀갔고, 많은 한국인과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으며, 그 중에는 성공한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시행착오를 격고있는기업 또는 실패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서도, 중국을 오가는 사라람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어, 2002년 한해 동안 항공기 이용승객이 400여 만 명에 달하여 전년대비 30%가 증가했고, 이들 중 90%가 한국인들이었다.
10여년전 한중간의 직항 교통편이 인천과 위해를 오가는 선박 한척 밖에 없던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 동안 중국관련 서적들도 수백 여권이나 출판되어있어, 잠시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중국에 직접 투자를 하거나 중국에 장기거주를 하려는 사람들 에게는 아직 충분한 자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국토면적보다는 조금 더 넓지만, 한반도의 45배, 대한민국 보다는 백배가량이나 더 큰 국토를 가진 중국을, 몇 권의 책을 읽고, 수년간 중국에서 살았다고 해서, 중국을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다만, 이곳에서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단편적으로 나마 하나씩 정리하여 묶어 나간다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다소라도 도움이 되지않으까 생각하며, 청도생활 10여 년 동안 경험하고, 느끼고, 배웠던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대한민국의 해외이민사 중, 본격적인 해외투자허가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10여 년의 짧은 기간에 한국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있고, 중국 내에선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말이 통하는 조선족동포들이 새로운 이주지로 선호하는 도시,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 속의 “리틀코리아” 로 불려질== 청도에 관한 내용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정리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정보의 가치란 한 사람이 알고있을땐 하나의 가치로 끝나지만, 여렀이 나눌 때엔, 몇 배 아니 몇 백배의 가치가 창출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따르기로 하였으며, 미흡한 부분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것을 믿는다.
2003년 8월. 산동성 청도에서 HP; 1360-542-5424 권 영 준 (전) 청도테크노다인전기공업유한공사 사장
1. 청도안내 개요. 청도는 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청도 시는 중국동부 산동반도의 남쪽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중국에서 몇안되는 경제 중심도시의 하나이며. 국제해운 및 해군, 관광도시로써 국내외에 이름있는 역사문화도시 이기도 하고, 산동성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하여, 청도 시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으며, 청도시정부 또한 더 많은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기를 희망하면서, 관계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
청도시는 한반도 와도 깊은 역사적 인연이 있는 도시중의 하나이다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 하고 나서, 세 번이나 다녀간 곳으로서, 제주도에서 구해온 불로초를(산삼) 진상 받았다는 양야대 (량야타이; 현재 청도시의 위성도시인 교남 시 양야진에 있으며: 청도지역에서 알아주는 술의 상표명으로도 쓰이고 있다)가, 지금은 국가급 관광휴양지로 지정되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위성도시인 교주시에는 고려 때 개성상인들이 송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묵었던, 고려정관이 있었던 곳으로, 2000년 12월 한국의 역사교수들과 청도대학 조선족 교수들이 교주시의 협조 하에 고려정관 기념비를 세워놓았으며, 교주시는 시중심 동부지역의 한국인과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상가건물을 지어 ”한국성”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중국의 지방행정기구가, 한국을 상징하는 공식명칭을 사용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청도시 연혁
청도시는, 10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젊은 도시로써, 청나라말기인 1891년(청나라 광제17년)에 이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공식 행정편제로 출범하였다.
1897년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산동에서 피살되는 교안사건을 구실로, 독일군에 의하여 점령되어 통치되었으며, 1914년 제 일차 세계대전을 독일이 일으키면서, 이 지역을 관할하던 독일군을 대신하여, 일본군이 점령하여 통치하다가,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1919년 “5.4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22년 12월 10일, 중국은 청도지역을 수복하였으나. 7년 후인 1938년 청도는 다시 일본에 강점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1945년 국민당정부에 접수되어 특별시로 되었다가,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가면서, 1949년 6월 2일 청도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고, 1986년부터는 국가단독계획시로서 성급 경제관리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
청도에는 한국기업의 투자가 1989년부터 시작되었고, 1992년 한중수교이후 투자업체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2003년 5월 현재 4,000여 한국업체가 진출하여있으며, 유학생을 비롯하여 한국인 장기거류자가 4만여명에이른다, (2005년 12월 현제 8천여 기업 장기거류자 8만여명으로 추산)
그 동안 한국인들이 이곳에 진출하였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경우도 많않지만, 이곳에서 성공적인 기업운영을 하고있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수교 이후 한국이 중국과 경제교류협력을 하는데 있어서, 청도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기업 또는 한국인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청도를 발판으로 삼는다면, 광활한 서부내륙에로의 진출에 있어, 실패의 확률을 훨씬 줄일수 있을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의 거리, 항공교통, 해운교통, 한국과 유사한 기후, 청도시정부의 적극적인 한국기업 유치활동, 등등의 것도 있겠지만, 청도는2008년 북경올림픽의 유일한 동반 개최도시로써, (요트경기 등 해양 스포츠경기가 청도에서 치루어진다) 올림픽이 끝난후엔, 그 위상이 중국에서 한층 더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전세계인이 기억하는 국제도시로써의 면모를 완벽히 갗출것이다.
이러한 발전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한국기업들이 더 많이 진출하여, 청도시경제발전에 기여한다면, 한국인의 입지 또한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이며, 한국인이 경영하는 각종산업 들이 인접한 지역에 집중되어있어, 상호도움을 주는 시너지효과 또한 극대화 될 것이다.
2. 지리위치와 자연환경.
산동반도의 남쪽과 황해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청도는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기후가 좋은 특색 있는 해변도시이다. 청도에는 많은 섬들이 있으며, 해안선의 총 길이가 87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그중 대륙 해안선이 730여킬로미터로 산동성 해안선의 1/4을 차지한다.
한반도의 서해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들이 이곳에서 모두 나오며, 가격 또한 저렴하다.
청도시는 산하에 7개 구(시남구, 시북구, 사방구, 이창구, 노산구, 성양구, 황도구)와 5개의 현급위성도시(교주시, 교남시, 평도시, 즉묵시, 래서시)가 있다.
총면적은 10,654평방 킬로미터로 한국의 경기도와 면적이 비슷하고 총 인구는 710만 여명이다. 그중 시내면적은 1.102평방 킬로미터이고 시내인구는 237만 여명이다. (2005년 12월기준 총인구 790얀명 시내인구 280여만명으로 추정)
청도는 군산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 온대 계절풍 구역에 자리잡고 있어, 날씨는 온대계절풍기후에 속한다. 시내구역은 해양환경과 동남계절풍 및 해류 등의 영향을 받아 현저한 해양성 기후특징을 가진다. 공기가 습하고, 기온은 생활하기에 적당하며, 4계절의 변화가 있으나 한국처럼 뚜렷하지는 않다.
봄에는 기온이 회복되는 속도가 완만해서 봄이 내륙보다 한달 가량 늦게 온다. 여름에는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리지만 혹서가 없다. 가을에는 바람이 선선하며 강수량이 적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며 기온이 낮으나 혹한은 없다.
청도의 지형은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하강하는 경사를 갖고 있다. 청도의 총 면적 중 고지대가 15.4%, 산언덕이 25.1%, 평지가 37.8% 그리고 저지대 가 21.7% 이다.
또한 3개의 주요 산악지대가 있으며, 북쪽으로 연대시(연타이)와의 경계지점에, 해발 736.3m의 대택산(따저산)이 있고, 남쪽으로 해발 724.9m의 교남(죠난)산맥이 있으며, 그리고 동남쪽바닷가로 해발 1,132.7m이며 도교의 발상지인 노산(라오산) 이 해안절경을 뽐내며 자리잡고 있다.
3, 역사 와 문화.
청도는 역사문화도시 로서 중국 도교의 발상지이다. 2500여년전 노자가 창시하고, 장자가 체계적으로 이론을 정립한 도교의 발원지가 노산이다.
6000여년전부터 인류가 이미 여기서 거주해왔으며, 동주(東周)시기(기원전 770-256BC)에는 산동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던 즉묵(卽墨: 지금의 지모시) 이 만들어졌다.
진시황(秦始皇)은 중국을 통일한 후 지금의 교남(膠南: 죠난)시에 위치한 양야대(瑯牙臺: 량랴타이)에 세 번이나 왕림한 적이 있었으며, 진나라 때 서복(徐福)이 함대를 거느리고, 양야대(瑯牙臺)에서 출항하여 한반도, 일본까지 항해한 사실이 역사기록으로 남아있다.
4. 경제와 발전.
청도는 중국의 중요한 방직, 경공업 및 화학공업 기지의 하나이다. 가전제품, 전자, 고무, 자동차 제조 및 식품 가공능력이 우수하다.
청도는 양곡, 과일, 축산, 수산물 생산 기지로서 농업자원 또한 풍부하다. 그중 평도(平度)의 대택산(大澤山:따저산: 품질 좋은 건축용 석재가 많이 생산되며 석재도매시장이 있음) 포도가 국내외적으로 유명하며, 평도의 명산 품인 고추, 생강 등은 일본, 한국 등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청도는 포구가 많고 간척지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미생물이 풍부하다. 도미, 농어, 생복, 굴, 소라, 황어, 왕새우, 해삼, 참게, 말린 조개관자 등 수산물 또한 풍부하다.
청도에는 중국에서 명성이 높은 하이얼(海爾)그룹(가전제품), 청도맥주 주식회사, 하이신(海信)그룹(가전제품), 오크마(澳柯瑪)그룹(가전제품), 쌍성(雙星)그룹(신발), 이중그룹(담배), 화동(華東)포도주 주식회사, 대양(大洋)식품그룹 등 저명한 기업이 있다.
독일이 세운 청도맥주는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맥주축제에서 금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하이얼(海爾)그룹은, 개혁개방 후 급속하게 부상한 신흥기업 으로써, 2002년 세계 500대기업 에 들어간 가전제품 제조회사로, 청도에 본사가 있으며, TV, 냉장고, 세탁기 등은 한국의 삼성, LG 와 세계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청도는 25개의 해양과학연구, 교육 및 관리기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종합대학인 해양대학이 있다. 청도는 중국해군의 중요도시중의 하나이며, 해양 관련 과학자의 50%이상이 있고, 해양과학연구, 국제학술교류와 인재배양에 힘을 쏟고있는 해양과학도시 이다.
또한 청도는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이 가장많이 모여있는 곳으로써 가발, 전자, 섬유, 봉제, 식품, 완구, 기계, 가구, 자동차부품 등등 거의 모든 품목의 제조업체들이 진출하여, 청도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등 IT산업분야의 기업들까지 청도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세계제일의 철강회사인 포항제철이 2004년도 가동목표로, 스텐레스 생산공장을 청도에 건설하고 있다.
청도에는 한국음식점을 비롯하여, 싸우나, 미용실, 중국어학원, 한글학교, 세탁소, 한글신문, 광고잡지 등 한국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편의시설 들을, 한국인 또는 조선족들이 경영하고 있어, 한국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5. 교통과 통신
청도는 항구도시로서, 중국 황하유역과 환태평양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4대 항구 중의 하나이며, 세계 130여개국가와 지역의 450여개 항구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
년간, 컨테이너 물동량이 263.9만 TEU에 달하며, 세계 20대 항구의 대열에 진입하여, 중국대륙의 최대 컨테이너 수송항구가 되었다.
청도 항은 중국에서 석탄, 원유, 광석, 컨테이너, 4개 품목의 통과량이 모두 1500만 톤을 초과한 유일한 항구이다.
한국과는 인천, 부산, 평댁, 군산, 등과 화물선이 통항을 하며, 여객선이 인천과 군산으로 주 2-3회 운항되고 있다.
육상교통은 제남-청도, 청도-은천(일부 구간완공), 환교주만등의, 고속도로를 통해 외부와 긴밀히 연결하여 사통오달의 육상교통망을 이루고 있어, 철도와 함께 여객 및 화물 수송이 매우 편리하다.
청도국제공항은 일본의 동경, 오사카, 후쿠오까, 한국의 서울, 부산, 대구, 태국의 방콕, 그리고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 10개의 국제 및 지역항로와 56개의 국내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공항의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완공후엔 시설면에서도 국제공항 으로써의 기능에 손색이 없을것이다. (2005년현제 신공항 청사는 완공 사용 하고 있고 활주로확장공사는 계속 진행중)
청도는 국내각지 및 세계 각국의 대도시와 통화하고, 전송할 능력을 갖추었고, 자동무선장거리 전화, 시내자동전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수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 전용선이 2002년말 시내 전 지역에 구축되었고, 해저광케이블이 1996년 충남 태안에서 청도로 연결되면서, 태평양의 광케이블 망에 연결되었다.
인터넷 정보통신기술이 계속 보급 발전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정보통신업체들도 청도에 독자진출하여, 통신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있다.
6. 문화와 관광.
청도는 중국 내에서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은 1920년대부터 청도를 관광도시, 그리고 여름 휴양지로 만들었다.
산과 바다와 도시의 조화로운 풍경, 그리고 굴곡진 해안선, 섬들, 독일사람들이 유럽풍으로 지은 빨간색지붕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초록의 나무숲들과 어울려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하며, 청도시가 보존하고 있는 팔대관(빠다관) 지역은, 갖가지 유럽식 건축양식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이 각각다른 모양의 저택들이 들어서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유명인사들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고있다, 건축에관심있는 사람들이나 건축학도 들이라면 꼭 한번 가볼만하다.
청도는, 서남부지역에 유럽 스타일의 구시가지가 있는가하면, 90년대 중반부터 본격 개발하기시작한 동부신시가지는, 고층건물들로 숲을 이루어, 현대식도시로서의 면모를 갗추어가고있다,
국제회의 및 대규모 전시회를 열수 있는 콘벤숀센타(산동전람중심)를 위시하여, 샹그리라, 리젠시등 최고급 호텔들이 진출해 있는가하면, 세계각국의 굴지의 기업들인, 미국의AT&T, 휴렛팩커드, 코카콜라, 일본의 미쓰비시, 마쓰시다, 한국의 포항제철, 대우자동차부품 등이 독자 또는 합자 형태로 진출했거나 진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신구도시의 조화는, 명실공히 청도로 하여금 유럽과 아시아의 특성이 공존하는 국제적인 문화도시, 산업도시로써의 위상을 굳히는데 큰몫을하고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구청도시정부청사로 쓰였던 독일총독부건물, 지금은 영빈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독일총독관저. 중국에서의 천주교 건축물로는 이름있는 천주교당 독일총독 사저로, 한때 국민당정부 장개석총통의 별장이기도 했던 화석루 독일 고대 성보식 건축물인 기독교회당 해안절벽에 붙여 지은 성보식 건축양식의 해양생물 수족박물관 등은 대표적인 유럽스타일의 건축물들이다,
7. 해변 과 공원.
청도에는 많은 공원과 해수욕장이 있다 그 중에 한국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가볼만한 해변공원 몇 군대를 소개한댜.
해상선박호텔 과 해상관광유람선. 청도시, 시남구 남서쪽 바닷가에 해상관광 유람선 선착장이있다.
배를타고 구시가지의 남단을 돌아오는 코스를 택하면, 해상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수있으며, 청도시가 자랑하는 푸른바다와, 신호산줄기의 녹색의 짙은숲, 그리고 그사이사이에 어우러진 빨간색 지붕의 유럽식건물들은, 잘그린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하다.
선착장 근처에는, 퇴역선박을 개조하여 간이호텔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저녁 무렵 이곳에서 연인과 함께 칵테일 잔을 나누며, 밤바다를 구경하는 멋도 경험 해볼만하다.
도로변 무도장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한국사람들 에게는 도로변 무도장을, 가까이서 한번쯤 구경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사람들의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시도하기 힘든, 남녀노소가 길거리에서 한데 어우러져, 클래식 음악에??춰 사교춤을 추는 모습을 보노라면, 중국인들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십명 또는 수백 명이 가로등 밑에서, 왈츠, 탱고, 룸바, 등등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 이라고나 할까. 특별히 끼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한번쯤 같이 어울려 보고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봄부터 가을 까지는, 청도시 곳곳의 공터가 저녘무렵부터 21시경까지 노천무도장으로 변하지만, 특별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곳은, 시남구 남서쪽 해변가에 있는 청도시해관(세관)건물 옆의 도로공원(잔교에서 보이는 반 원형의 해상식당건물 앞)이다
잔교(잔쵸)
잔교는 청도의 상징이다. 청나라 때 이홍장 대신이 큰 배를 정박시킬 항구가 없어 임시로 지은 부두가 지금까지 사용 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잔교의 원형이다. 현재 잔교는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그림전, 사진전. 서예전 등 전시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구 시가지의 중심거리인 중산로 남단에 있다.
소청도
소청도는 “금(琴)도”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누워있는, 누에고치 와 같다고해서 이같이 불린다. 면적이 12,000평방메타의 작은 바위섬으로 정상에 등대가 있고, 나무숲이 우거져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전쟁(2차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긴둑을 쌓아 섬과 연결하고, 바위 밑에 방공호를 파서 포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어 간이휴게실로 이용되고 있다.
1987년부터 소청도 공원으로 개발되었으며, 섬안에 까지 차량이 진입하여 주차할수 있다. 진입로 우측으로는 중국 유일의 해군박물관이 있어, 잠수함과 구축함의 겉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더할수있다.
소어산공원
구 시가지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공원 정상의 8각정 관망 발코니에 나서면, 남쪽으로 확트인 바다가 한눈에들 어오며. 서쪽으로는 소청도, 와 잔교가 멀리보이고, 동쪽으로는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옛날에 봉화가 피어 올려졌다는 신호산 정상의 관망대를 볼 수 있고, 그 아래로 독일총독의 관저로 쓰이다가, 지금은 영빈관으로 쓰여지고 있는, 중세유럽의 성체를 본딴 석조건물이 숲속에 들어서있다.
북서쪽으로는 천주교성당, 기독교당 등이 들어서있어, 100여년전에 건설한 유럽풍의 시가지모습을, 그대로 볼수있는 유일한 곳이다.
청도를 상징한다는 붉은 기와지붕, 초록의짙은숲이 푸른바다와 한데 어우러진 그림 같은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이다.
팔대관(빠다관)
독일 귀족들의 여름별장 지대로 건설되었다는, 팔대관은 청도시가 보존지역으로 지정하여 지금은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지역내의 모든 도로는 잘 정비되어있고, 도로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심어놓았으며. 수백채의 저택들이 각각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독일총독의 사저로 지어져, 국민당정부시절 장개석 별장으로 사용 되었었다는, 화석후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결혼시즌에는 젊은 신혼부부 들이 찾아와, 기념촬영을 하는 단골장소 이기도하다.
오사광장과 음악공원
동부 신시가지의 시 정부청사 앞에 있는 5,4광장에는, 청도를 상징하는 5,4운동 횃불 탑이 있다,
중국근대사의 시발점이 되기도했던 5,4운동은, 1919년 5월4일 북경대학생들이 천안문광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항일시민 학생운동으로, 1911년의 신해혁명과 함께,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 야할 역사적 중요사건이다.
1914년 독일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세계 제1차대전의 시작으로, 청도를 통치하고 있던 독일을 대신하여, 일본군이 청도를 점령하였다.
1918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1차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의 청도점령이 기정 사실화된다.
이시기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창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은 식민지 지배하의 나라들이 독립을 주장하였으며, 일제지배하에 있던 한반도에서는 1919년 3월1일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같은해 중국에서도, 일본의 청도점령이 빌미가 되어, 5,4운동이 시작되었으며, 1922년 일본군이 마침내 청도에서 물러났다.
5,4광장은 1997년 신 시 정부청사가 이전해오면서, 만들어졌고, 청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번씩찾는 명소가 되었다.
5 4광장의 서쪽해변에는 음악공원이 있다. 공원을 거니는 동안 땅밑에 설치해놓은 스피카에서는, 클래식음악이 쉼없이 흘러나온다. 군데군데의 잔디밭에는 세계유명음악가 들의 초상이 동판에 세겨져있어, 학생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는 훌륭한 공원이다.
현대미술관과 해변조각공원
동해로를 따라 돌고래쑈장을 지나고 석노인해수욕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해변으로(금해만 빌라단지 앞) 현대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동쪽으로 해변을 따라 조각공원이 펼쳐진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조화를 이루는 조각품들이, 잠시둘러 볼만하다.
석노인 해수욕장과 관광휴가 구
석노인 국가관광휴가 구는 청도시고급과학기술단지 남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여름 국제해양 축제가 열리고, 곧이어 열리는 국제맥주축제 또한 이곳에서 진행된다.
이 관광 휴가구 안에는 산동전람중심(콘벤션쎈타)이 있어, 국제가전제품 전시회등 국제행사가 매년 열리며. 고급빌라단지, 해수욕장과 해변, 해양 오락센터, 돌고래 수족관, 청도 국제 맥주성, 국제골프클럽, 문화 전시센터, 센츄리 광장 및 스포츠 센터 등이 있다.
청도의 노산
노산은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바다에 인접한 산으로는, 가장 높은 산으로써, “해상절경의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정상은 해발 1132.7m이고, 1800km 중국 해안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이다. 노산 의 남쪽은 절벽을 이루며 바다에 접해있고, 숲 과 온천 및 폭포가 어우러진 국가급 공원이다.
노산 은 또한 노자가 창시하고, 장자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도교의 주요 근원지 이다. 당나라(신라 때), 송나라(고려 초), 원나라(고려중기), 명나라(조선 초), 청나라(조선중기) 때도 청도의 노산 에는 도원(道院)이 많이 지어졌는데, 노산 북동쪽에 위치한 태평궁 위쪽의 관천동(굴)은 도인들의 수련장으로 쓰였다고 하며,꼭대기의 천원바위 에서 바다를 향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절벽과 어울려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풍광이, 가슴을 확트이게하는 절경이다.
노산 동남쪽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대청궁은 전진파(全眞派)도교의 두 번째로 큰 승지로 장자가 제자들을 길러냈다는 곳으로써, 도교의 삼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사당 한곳에 쓰러져 있는 비석에는, 도교의 기본 학설이며 풍수지리의 기초이론에도 나오는, 주역의 기본문양인 태극무늬와 8궤의 도형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이 문양에서 발췌되어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한국사람이라면 한번 더 눈 여겨 볼만하다.
서쪽에서 들어가는 북9수 지역은, 외9수 내9수를 합하여 18담의 계곡이 연연히 이어지며,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듯한, 계곡의 주변경관이 일품이다. 북9수 입구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앵두 축제도 기억해 둘만하다.
마산 (국립자연보호구)
1992년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지정 되었으며 청도 즉묵(지모시) 서쪽 4㎞에 위치하고 있다. 청-은고속도로 서쪽 마지막 출구를 빠져나와,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우측으로 진입로가 보인다.
산중턱의 절벽이 석주군으로 이루어 졌으며, 규화목인 각종동물화석과 고대 유적들이 많아, 지질학자들이 소규모 지질 박물관 이라고도 한다.
보호구내에 지질 유적들이 많고 아주 독특하고 다양한 화석들은, 고대 지질과학 연구에 큰도움을 주고있다.
화산이 폭발 했을 당시에도 자연 그대로 잘 보호 되어있으며, 화산암 지역에있는 대리석등 각종 암반들로 구성된 석주군은, 영국, 미국 등과 함께 세계 3대 석주군에 속한다고 한다.
전횡도(田橫島: 텐황도) 와 온천
지모시 동쪽 해안에 있는 전횡도는 2000여년의 오랜역사를 가진 고대 유적지 로써, 한왕조가 무너지면서 그곳으로 피난을가서, 끝까지 항복하지않고, 저항했던 이들의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청도에서 자동차로 선착장까지 2시간여 걸리며, 도착하면 차량은 주차해두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섬안에는 숙박시설이며 위락시설이 있고, 밭데리로 운행하는 미니 셔틀카도 있다.
주말에 가족들이나 직원들과의 단합대회 장소로 추천할만하다. 돌아오는 중간에 온천장에 들러볼수도 있다.
8. 생활과 환경.
90년대 중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청도 동부 신시가지 구역은 이미 청도시의 정치, 경제, 금융 및 문화의 중심지로 바뀌어졌으며 현대식 고층건물들은 국제도시로써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동해로(東海路)조각물거리와 석노인(石老人)관광휴가구는 서로 연결되어 길이 12킬로미터나 되는 해변풍경관광 선을 구성한다. 도시쓰레기 처리율은 100%에 달하고 시내오수처리율은 52.5%에 달하며 2008년에는 85%에 달할 예정이다.
청도시는 2000년에 “국가환경보호 모범도시”의 칭호를 수여 받아 중국에서 환경상황이 좋은 도시중의 하나이며, 거주와 휴가를 즐기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자연 보호의 모델 도시” 이기도 하다.
9. 청도와 올림픽.
청도는 2008년 제29차 북경올림픽의 유일한 동반개최 도시로서 올림픽 요트경기를 개최할 계획이다. 청도시는 이미 전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생태환경을 개선하고 “녹색올림픽”, “인문올림픽”의 정신을 살려 현대올림픽경기가 환경보호와도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녹색 올림픽도시로 건설할 예정이라고 발표한바 있다.
2003년 말까지 국제관광부두와 요트구락부 등 오락 서비스시설을 완료하고 2006년 말까지는 올림픽체육관과 경기장건설을 완공할 예정으로, 2008년에 아름다운 해안 도시 청도에서 올림픽 해양 경기가 개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도는 명실공히 세계인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 스포츠센터로 각광 받게 될 것이며, 건설중인 도심관통 도시고속도로와 함께, 2007년까지는 200km의 “관광도로”가 청도의 해안을 따라서 완성될 예정으로 관광도시로써의 위상을 더한층 높이게 될 것이다.
2008년까지 인민폐 12억원을 확장비용으로 투자하게 될 청도 공항은 중국 내 거의 모든 대도시 및 중도시 들과 직항로를 개설하게 되고, 20개 이상의 국제선이 새로 개통될 예정으로, 50,000㎡ 의 대합실과 함께 새로운 공항은 어떠한 크기의 여객기도 수용 할수있게될 것이라 한다.
청도시는 앞으로 수년 동안, 인민폐 60억 원을 환경분야에 투자하여, 교통 소음통제, 해안 오수처리 향상, 불법 바다 양식구조물 제거, 기름유출 대책반 설립, 적조예보 시스템구축, 환경친화적인 건축재료 사용촉진, 청정에너지 사용촉진, 가정쓰레기 문제개선, 석탄보일러 사용금지, 녹색 공원 건설 등에 사용하게 됨으로써, “그린 올림픽”의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 건설된다
10. 청도와 세계.
1979년 10월 일본의 시모노세끼시와 자매결연도시 관계를 맺은 이래 2001년까지 청도는 9개국 9개 도시와 친선관계를 맺고 11개 국가의 18개 도시와 친선협력 관계를 맺었다.
한국과는 1993년에 대구시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95년에 인천시, 99년에 평택시와 친선 협력 관계를 맺었다
외국 공관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청도에 있다.
한국기업의 전용공단으로는 경상남도가 교남시에, 부산시가 래서시에 각각 전용공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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