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최서남단 전남 신안 가거도

2009. 6. 2. 22:50국내산행정보/....국내산행 정보

국토 최서남단 전남 신안 가거도
가거든…물음표 세상 가득 느낌표 찍고 오소
2008년 05월 31일 (토) 글·사진/유철상(여행작가)레저전문위원 poetry77@empal.com
   
▲ 섬등반도 낙조
일상에 쫓기는 사이 여름이 문턱을 넘고 있다. 5월의 끝이라 한여름 더위를 동반하진 않지만 바다색이 푸른빛으로 변하는 계절이다. 세상사 번뇌를 모두 털어내고 싶다면 섬으로 가자. 신선도 울고 갈 정도의 비경을 자랑하는 한반도 최서남단 가거도는 사랑하는 애인보다 매혹적이고 심금을 울리는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 망향바위 기암절벽
#신선도 울고 가는 한반도 최서남단의 낙원

수평선 너머에 섬이 있다. 서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쪽빛 바다가 출렁거린다. 한반도 최서남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다가 영원히 물귀신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도착하면 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가거도(可居島)라 했다.

가거도와 가까운 흑산도는 목포항에서 뱃길로 2시간 남짓 떨어진 섬이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섬이지만 흑산도는 모처럼 큰맘 먹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배멀미가 심한 사람이라면 뱃길을 견디기 어렵고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심한 날에는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가거도에 비하면 흑산도까지 가는 뱃길은 유람선 코스나 다름없다. 배멀미를 참고 마음을 쪽빛 바다에 던져버리고 나면 세상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렵 기암괴석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그 기암괴석 위로 하얀 등대가 눈부시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을 놓고 세상의 시름을 잊을 만하면 도착하는 곳이 바로 가거도다.

우리나라의 영토 가운데 중국과 가장 가까워서 '중국 땅의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라 일컫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가거도를 두고 "가도 가도 뱃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하고, 다시 뭍으로 나오기도 쉽지 않은 탓에 "가거든 오지 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얀 등대를 바라보며 작은 소원을 이룬 것처럼 기쁨이 느껴지는 사이 선착장 주변은 분주해진다. 섬 주위를 하루 종일 도는 유람선과 고깃배들이 통통거리고, 손님을 배웅 나오거나 뭍에 다녀오는 가족을 마중 나온 사람들의 일상이 반갑게만 느껴진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있는 가거도는 그렇게 분주하고 활력이 넘친다.

어떤 일도, 어떤 근심도 모두 내려놓고 나조차도 잊어버리고 싶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온전히 여유롭고 싶다. 그런 곳에서 1주일이나 한달을 털털거리며 살고 싶다. 혹여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단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 가거도는 바로 낙원이나 다름없을 듯하다.

'너무 멀고 험해서 / 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 거기 /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 내며 /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 이곳까지는 차마 생각 못했던 // 그러나 /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조태일 시인이 쓴 '가거도'라는 시를 보면 가거도에 대한 연민이 엿보인다. 1982년 8월 소설가 송기숙씨를 비롯한 몇몇 문인들과 가거도를 돌아본 시인은 이듬해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은 가거도에서 며칠 동안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가거도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이 시의 구절들이 아주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남성미 넘치는 가거도의 절경들
   
▲ 해식동굴
숲이 울창하고 해안마다 절경을 이루는 가거도는 홍도 못지않게 관광자원과 해안절경이 많다. 홍도의 풍광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여성미를 보여준다면 가거도의 자연은 굵고 힘찬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 특히 독실산 정상, 장군봉과 회룡산, 돛단바위와 기둥바위, 병풍바위와 망부석, 구정골짝, 소등과 망향바위, 남문과 고래여, 국흘도와 칼바위 등의 가거8경은 홍도33경에 비견될 정도로 빼어난 절경이다. 더구나 가거도의 자연은 아직까지도 외딴 섬 특유의 순박한 인심과 때 묻지 않은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가거도에 한번 이상 가본이라면 기암절벽이 자라목처럼 뻗어있는 항리마을이 가장 좋은 곳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늘 고즈넉한데다, 검푸른 바다로 뻗어나간 섬등반도 위쪽의 드넓은 초원 풍광이 이국적이다. 하지만 관광이나 피서를 목적으로 가거도를 찾는 외지인들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워낙 뱃길이 멀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적기 때문이다. 가거도 유일의 해수욕장인 동고개해수욕장은 몽돌해변이라 파도 소리가 좋고 물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가거도를 찾는 주 관광객은 낚시꾼들이다. 주민들도 육지에서 찾아오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운영하는 집이 많다. 고기 잡던 어선 중에는 낚시꾼을 태우고 여러 '포인트'로 옮겨 다니는 낚싯배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가거도 전역에 산재한 갯바위는 천혜의 낚시 포인트다. 우럭과 노래미, 감성돔이 심심찮게 걸려 강태공들을 열광시킬 정도다.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가거도는 2007년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다. 박해일, 박솔미 주연의 이 영화는 주로 가거도리 2구(항리마을)에서 촬영되었다. 그 중에서도 항리마을 선착장의 계단길 중간에 자리한 섬누리민박(태공장), 지금은 폐교된 항리분교, 그리고 항리분교 뒤편의 섬등반도 초원 등에서 주요 장면이 촬영되었다. 영화촬영 기간 내내 감독과 배우들은 이곳 섬누리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가거도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무엇보다도 일기예보를 확인한 뒤 일정을 잡아야 한다. 워낙 먼바다에 자리해 있어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파도가 높아 여객선이 결항되는 경우가 많다.

   
가거도에서 하룻밤 묵기에는 늘 고즈넉하고 자연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2구 항리마을이 가장 좋다. 이곳의 민박집은 방에서 창문만 열면 가거도 특유의 검푸른 바다와 섬등반도의 기암절벽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시원스럽다. 집 자체는 그저 평범한 건물이지만, 그 터만큼은 울릉도 북면 송곶산 아래의 해안절벽에 올라앉은 추산일가에 비견될 만큼 바다 전망이 탁월하다.

무릇 땅끝이든 바다끝이든 끝에 발을 디뎠을 때 묘한 감동이 묻어나는 게 바로 여행이다.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일상을 털어버리고 극점에 섰을 때 감동은 더욱 커진다. 여름 휴가철에 찾는 섬 여행도 좋지만 바다색이 푸르러 섬까지 푸른빛으로 물드는 지금 가거도에서 은둔해보자. 휴대폰도 잠시 꺼두고.

여행 tip/
■가는 길: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가거도행 배를 타면 된다. 목포~가거도행 배편은 동양고속(홀수일 운항, 061-243-2111), 남해고속(짝수일 운항, 244-9915)의 쾌속선이 교대로 매일 1회씩 왕복운항. 도초, 홍도, 하태도를 거쳐 가거도까지는 약 4시간30분 소요.

■섬내 교통편:가거도에는 버스나 택시가 없다. 게다가 섬의 지형이 몹시 험해서 찻길도 대리~항리, 대리~독실산 정상 구간에만 개설돼 있다. 대리~대풍리는 산길, 항리~대풍리 구간은 찻길과 산길을 번갈아 이용해야 한다. 도보로 대리~항리는 약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맛집:항리마을의 섬누리민박(061-246-3418)은 항리선착장 위쪽의 해안절벽 중간쯤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민박집이다. 미리 부탁하면 식사도 차려준다. 우럭찜, 전복회, 노래미탕, 홍합 양파볶음 등 진귀하고 값비싼 해물 요리가 끼니때마다 밥상에 오른다. 주인아주머니의 손맛도 좋아서 음식마다 맛깔스럽다. 1인분에 5천원으로 저렴하다. 대리에는 은혜식당(061-246-4462), 해인식당(061-246-1522) 등 음식점이 있다.

■잠자리:섬의 잠자리는 여행 떠나기 전에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 좋다. 예약된 손님은 여객선의 도착시간에 맞춰 자동차를 갖고 선착장으로 마중 나온다. 가거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대리(1구)에는 미로장(061-246-4468), 남해장(061-246-5446), 한보장(061-246-5700), 까치슈퍼민박(061-246-3430) 등 숙박업소가 많다. 대부분 미리 주문하면 식사도 차려준다. 문의:흑산면사무소 가거도 출장소(061-246-5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