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비단산] 연해주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아서(출처:DBS훼리 홈페이지)-2

2011. 9. 2. 10:26중앙아시아·몽골·러시아/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아서 / (中) 지역별 항일투쟁 유적

 그날의 노래가 지금도 이어지는 성지(聖地)

◇4월 참변 추도비.




`동방(보스토크)을 정복하자(블라디)'라는 말에서 유래한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주도(主都)로 삼고 있는 연해주엔 항일 유적지를 비롯한 애국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애국 유적들은 동해항 국제여객선인 이스턴 드림호가 매주 1회씩 운항하고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여객선 터미널에서 부터 볼 수 있다.


극동문서보관소 항일기록 보존

발해산성 유적 슬픈 전설 구전

추도비엔 "벅적은 영원하리라"



블라디보스토크 여객선 터미널 바로 앞의 블라디보스토크역은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1909년10월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하얼빈행 기차를 탔던 곳이다. 또 블라디보스토크역 인근엔 안 의사가 하얼빈 거사 후 심문을 받던 일본 대사관 건물이 있으며 연해주 독립 운동의 흔적을 엿보게 해주는 극동문서 보관소가 있기도 하다. 극동문서 보관소엔 13도 의군 도총재를 맡아 연해주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유인석(1842~1915년) 등 독립 운동가들에 관한 문서가 보관돼 있다.


“오도다 오도다 자유의 춘광(春光)이 / 화려한 금수강산에 이를 잊을 수 있겠는가 / 노예의 압박을 받는 민족이여 / 자유의 노래를 드높이 부르자”


블라디보스토크시내의 고려인 거주지였던 신한촌 등지엔 김철훈 등이 작사, 불리던 노래들도 몇몇 전해져 독립 운동가들의 확고한 국권 회복 의지를 짐작게 해준다. 이젠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블라디보스토크시엔 1912년 민족학교인 한민학교가 세워졌고 해조신문사와 대동공보사 등 애국 언론사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수리스크시 또한 헤이그 밀사였던 이상설(1870~1917년) 등 독립운동가 등의 강인한 애국정신이 느껴지는 유적들이 많다.


우수리스크시에서 우쩨스노예 마을로 향하는 길목의 수이푼 강가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져야 했던 독립운동가의 피맺힌 한이 서려있는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수이푼강 건너편의 크라스노야르 마을엔 926년 발해군이 거란군과 격전을 치렀던 길이 8km 높이 5m가량되는 발해산성이 1,0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버티고 서있다. 최후의 1명까지 산화했던 거란군과의 전투 후 아들과 남편 등을 잃었던 여인들이 통곡하던 수이푼강은 슬픈 강이라고도 불렸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다.


발해 성터 등도 남아 있는 우수리스크시엔 1917년 해외에선 최초의 4년제 대학인 고려 사범전문학교가 건립돼 민족작가였던 조명희(1894~1938년) 등이 후학을 육성했었다. 우수리스크에선 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최재형(1885~1920년)이 마지막 거주하던 집과 1917년 전로한족중앙회가 개최됐던 건물도 찾아볼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은 지난해 11월2일 최재형 고택과 전로한족중앙회가 개최됐던 건물에 기념 동판을 부착,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최재형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러시아인 등 240여명은 1920년 4월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전원 총살됐으며 현장에 4월 참변 추도비가 세워져있다. 4월 참변 추도비엔 “승리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들의 업적은 영원하리라. 여기는 240명의 빨치산이 산화한 장소”라고 적혀 있다.


한편 두만강 근처의 크라스키노(연추) 마을 등지엔 안중근 의사가 김기룡 백규삼 등 동지 11명과 단지 동맹을 결성, 이토 히로부미 등의 암살을 맹세하던 터 등도 있다.


김대길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연해주 일대에선 관광객들의 애국심을 한층 더 북돋워줄 항일 운동 또는 발해 유적 등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장성일기자 sijang@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