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명산 답사

[러시아 비단산] 연해주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아서(출처:DBS훼리 홈페이지)-3

trekker 2011. 9. 2. 10:27

연해주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아서 / (完)애국정신 보존과 계승

 “애국선열들의 업적 재평가 해야 한다”

◇극동대학 한국어학과 수강생들. 재학생 300여명 중 고려인은 100여 명뿐이다. (사잔 위)▶블라디보스토크 거리에 있는 전 일본 대사관 건물. ▶▶우수리스크 지역서 고려인들이 사용하던 총.(사진아래)




블라디보스토크시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의 항일 유적지와 발해 유적지 등에는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쳐가며 조국을 지켜내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이들 유적 중 상당수는 현재 이렇다 할 기념비나 안내판조차 세워지지 못한 채 홀대받고 있어 애국 관광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김알렉산드라 등 공적 폄하

기념비 한국아 안내판 없어


···


독립운동가 후손 등 고려인

모국어 배울 장소·기회 필요



또 연해주 일대에서 조국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 공산당과 손을 잡았었다는 이유로 저평가되온 터여서 재고해 볼 문제라고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연해주 애국 유적지 중 우수리스크시내의 최재형 고택과 전로 한족중앙회 개최지 등에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이 늦게나마 기념 동판을 부착했다.


이와 함께 우수리스크시의 수이푼 강가 등에는 헤이그 밀사였던 이상설 유허비와 4월 참변 추도비 등이 세워져 독립 운동가들의 애국 정신을 기릴 수 있게 됐다. 또 블라디보스토크시의 극동대학엔 장도빈의 아들인 장치혁 고합그룹회장이 1995년 한국어학과 건물을 건립한 뒤 대학측에 기증, 고려인들에게 모국어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하얼빈행 기차를 탔던 블라디보스토크역과 우수리스크 발해산성 등지엔 기념비나 안내판조차 세워지지 못한 상태다.


기념 동판이 부착된 최재형 고택과 전로 한족중앙회 개최 건물 등도 이미 러시아 사람이 살거나 러시아 학교로 변모된 까닭에 애국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구경하기가 힘들게 됐다. 4월 참변 추도비 역시 러시아어로만 안내 문구가 적혀 있어 한국 관광객들로선 연해주 독립 운동가들의 치열했던 활약상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들 연해주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이 제정 러시아군과 연대, 고려인들의 항일 투쟁에 족쇄를 채워오자 러시아 공산당과 함께 힘을 합쳐 공동 대응했었다.


하지만 한인 사회당을 창립, 연해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알렉산드라(1885~1918) 등은 이처럼 공산당과 협력했었다는 이유로 그간 애국 업적이 폄하돼 왔다.


이에 대해 이진상 우수리스크 원불교 교무는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은 당시 상황과 논리에 따라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 알렉산드라가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던 1917~1918년께는 제정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과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 시베리아로 출병했을 때였다.


연해주에 거주 중인 고려인들은 장치혁 고합그룹회장의 극동대학 한국어학과 건물 기증 등의 노력에도 불구, 날이 갈수록 모국어를 잊어 버리고 있어 아쉬움을 사고 있다. 한국어를 배워도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비롯한 대다수 고려인들은 모국어 배우기를 포기, 러시아 사람처럼 살고 있는 형편이다. 극동대학 한국어학과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 300여명 중 고려인은 100여 명뿐이며 여타 초·중·고교에선 아예 한국어를 배울만한 곳도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근영 DBS크루즈훼리 상무는 “연해주 일대 애국 유적지에 기념비 등을 세우는 한편 한국어 학교 확충과 고려인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했다.


장성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