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정의 에어카페> ‘동양의 스위스’ 中 메이리쉐산

2007. 12. 2. 12:33중국/중국 서부 트레킹

해발 6740m의 메이리쉐산(梅里雪山)은 중국 남서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중국의 국가급 자연 보호구이다. 티베트인들이 우러러 모시는 10대 성산(聖山)중 으뜸으로 꼽힌다. 해질 무렵 석양에 붉게 물든 메이리쉐산의 만년설을 감상하기 위해 샹그리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나와 중국인 친구 조우펑, 류찬은 천하의 비경으로 꼽히는 메이리쉐산을 둘러보기로 결정하고, SUV차량으로 여행하는 현지인 투어코스에 참여했다. 우리와 이틀 여정을 함께 하게 된 기사는 장(長)족의 청년 넝푸치린. 샹그리라에서 태어나 30년이 넘게 자란 그는 이 지역을 훤히 꿰뚫고 있는 베테랑 드라이버이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우리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짙푸른 녹음의 향연, 거대한 산맥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초원의 모습은 이곳이 왜 ‘동양의 스위스’로 불리는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산과 계곡을 따라 지그재그로 난 길을 타고 한참을 달리는데, 산에서 흘러내려온 토사와 돌덩어리들이 보호망을 뚫고 내려와 도로의 한쪽 차선을 막고 있는 모습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갑자기 ‘쿵’소리가 나며 차 지붕으로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산 위에서 돌멩이가 떨어진 모양이다. 괜찮은지 물으니,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넝푸치린은 차 앞쪽에 걸어놓은 노란 실뭉치 같은 것을 만지작거렸다. 라마교의 유명한 스님이 안전을 축원해 준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가 많이 망가졌을까 걱정하는 나를 보고는 “자시더러”라며 웃는다.

‘자시더러’는 장족 사람들이 인사처럼 사용하는 말로‘모든 것이 잘 될거예요’라는 의미가 있다고 조우펑이 설명을 해줬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다른 사람을 축복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말 한마디를 통해, 물질적으로 부족한 이곳이 행복지수는 왜 높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자시더러’를 주문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흰 구름이 산 정상을 가려 만년설을 볼 수 없었을 때, 우리는 ‘자시더러’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비가 내려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구경할 수 없었을 때도 ‘자시더러’라고 말하며 즐겁게 받아들였다.

말은 곧 마음과 통하는 것일까.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면서, “행복하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산을 감싸고 있던 흰 구름이 잠시나마 사라지면서 메이리쉐산의 눈부신 만년설을 보았고,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다가 떠난 후에는 비가 내리는 행운까지 누릴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차가 서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연료 넣는 것을 깜빡했던 모양이다.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 넝푸치린은 우리의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된 점을 너무 미안해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먼저 ‘자시더러’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한번 더 주문의 신비한 힘이 작용하였는지, 차가 기름을 넣으러 간 사이 초원에 남아 사진을 찍기로 했던 나는 고운 색동옷을 입은 장족의 꼬마아이를 만나,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장족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담긴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 온 지금, 나는 갑갑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 자신에게 행복의 주문을 건다. “자시더러! 괜찮아. 모든 일이 잘 될거야….”

<정윤정/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