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삼공(공묘, 공부, 공림)曲阜三孔(孔廟, 孔府, 孔林)
곡부(曲阜)는 춘추시기 로(魯)나라의 수도이며 우리나라 사상가, 교육가, 유가(儒家)창시인 공자의 고향이다. 여기에는 풍부한 문화유산이 있는바 그중 가장 이름있는 것이 바로 중외에 이름날린 곡부삼공--공묘, 공부, 공림이다.
공묘(孔廟)
공묘는 곡부성내에 있는데 건축규모가 웅대하고 화려하며 우리나라에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가장 큰 사묘이다.
공자가 서거한 이듬해(기원전478년) 로애공(魯哀公)은 공자의 옛댁을 절로 개조했는데 그후 력대제왕들이 계속 공자를 동봉(加封)하고 절을 확건했으며 청조에 이르러 옹정황제가 공묘를 지금의 규모로 건설했다. 공묘의 중점유람지는 중축선(中軸線)우의 규문각(奎文閣), 십삼비정(十三碑亭), 행단(杏壇), 대성전(大成殿) 및 력대 비석조각(碑刻)이다.
규문각의 이름은 28개 점성(星宿)중 문장의 성쇠를 주재하는 규성(奎星)으로부터 온 것이다. 규문각은 장서각(藏書閣)으로서 각내에 력대제왕이 공자에게 선사한 책들이 저장돼 있었는데 력대 전란을 겪어 장서가 대부분 없어졌다.
십삼비정은 대성문(大成門)앞쪽 동서량켠의 정원안에 세워져 있다. 십삼비정중 당, 송, 원, 명, 청 각조대의 황제가 하사한 여러가지 비석 53개 있어 봉건사회에서 공자의 숭고한 지위를 충분히 보여줬다.
행단은 대성전 앞복도의 가운데 있는데 공자가 강학하는 곳이라고 전한다. 행단옆에 고전(古檜)나무 한그루 심어져 있는데 "선생이 손수 심은 전나무(先師手植檜)"라 한다.
대성전은 공묘의 주요 대전이다. 당조때 "문선왕전(文宣王殿)"이라 했는데 송휘종(松徽宗) 조길(趙佶)이 공자를 "고대성현을 집대성(集古聖先賢之大成)"했다고 받들어 "대성전(大成殿)"이라 이름고쳤다. 대성전의 웅위한 건축과 화려한 장식은 전국의 공묘가운데서 으뜸일뿐만아니라 대전 앞처마에 10개 룡조각 돌기둥은 그 기세가 자금성을 앞도할 지경이다. 대전 가운데 공자의 조각상을 모시고 량켠은 사배(四配)와 십이현(十二哲)의 조각상이다. 대전앞 동서량쪽복도에는 력대 비석조각을 진력했고 침전(寢殿)뒤의 성적전(聖跡殿)에는 공자의 업적을 적은 120폭 명조 돌조각 련환화를 수장했다. 옛터 우물뒤(故宅井后)의 로벽(魯壁)은 진시황 분서갱유때 공자의 제9대 자손 공부(孔fu)가 《상서(尙書)》,《례기(禮記)》,《론어(論語)》,《효경(孝經)》를 수장한 벽장(夾墻)인데 후세사람들은 공부의 고대문화를 보호한 공적은 기념하기위해 이 로벽을 수복건설했다. 공묘에 수장한 대량의 비석조각은 그 수량이 서안비석림의 다음으로 가 우리나라 제2비석림이라 불리운다.
공림(孔林)공림은 공자 및 그후대의 묘원(墓園)인데 곡부성북에 위치해 있다. 공림은 부지면적이 3000여무에 달하며 원내에 고목이 첩첩하고 나무아래에는 무덤이 빼곡하다. 그중 공자. 공리(孔鯉), 공급(孔及) 3대의 무덤주위에는 주색 벽으로 둘렀다. 이밖에 해정(楷亭), 주필정(駐bi亭)이 있는데 황제가 공자에게 제사 지내러 올때 휴식하는 곳이다.
공부(孔府)공부는 서쪽에 공묘와 접해 있는데 공자세습 "연성공(衍聖公)의 직계 자손이 거주하는 곳이며 명조와 청조 황제궁실다음으로 가는 가장 큰 관저이다. 지금 공부의 부지면적이 240여무에 달하며 청(廳), 당(堂), 루(樓), 헌(軒) 등 여러 형식의 건축이 463채로서 동, 중, 서 세갈래로 나뉘여 있다. 동쪽갈래는 가묘(家廟)이고 서쪽갈래는 학원(學院)이며 중부갈래는 주체건축이다.
곡부는 중국력사문화명성으로 문물고적이 매우 많은바 상술한 곡부삼공이외에 로국고성유적지(魯國故城遺址), 주공묘(周公廟), 안묘(顔廟), 맹묘(孟廟), 소오릉(小吳陵) 등 명승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