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울릉도의 마지막 비경....

2009. 10. 11. 21:12국내산행정보/....국내산행 정보

 깊은 원시림·깎아지른 절벽…태고의 비경 그대로

                  - 울릉도 일주도로 미개통 구간 4.4㎞의 속살

 


비경 간직한 북동해안 깎아지른 해안단애로 이뤄져 유일하게 일주도로가 개설되지 못한 울릉도의 북동쪽 해안. 덕분에 아직도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밤엔 별천지 인가가 전혀 없는 바닷가에서는 별이 쏟아질 듯 가득 박혀 있는 밤하늘을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죽도가 밤바다를 떠가는 방주처럼 보인다.

울릉도 가장 큰 동굴 4㎞에 이르는 바위절벽 곳곳에는 크고 작은 해식동굴이 널려 있다. 용굴은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동굴이다.

특산물 명이나물 인적이 드문 산속에는 울릉도 특산인 명이나물(산마늘)이 지천에 널려 있다.

갑오징어 새끼 바닥이 훤히 비쳐 보이는 맑은 바다에서 갑오징어 새끼들이 형광색을 반짝이며 헤엄치고 있다.

울창한 숲길 산길은 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숲이 우거졌는데 온대와 난대 식물이 뒤섞여 다양한 식물상을 보여준다.

이름없는 폭포 해안에는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이름 모를 폭포들이 연달아 있다. 이런 원시자연의 속살을 보려면 카약 같은 작은 배가 제격이다.
파도를 막자! 길을 뚫자!

거칠고 아득한 동해의 한복판 울릉도의 주민들은 이 구호를 오랜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왔다. 바다 한복판이니 파도를 막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길을 뚫자고 외치고 나선 건 좀 생뚱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방이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둘러싸인 울릉도에 들어서면 이 섬이 그리 간단치 않은 곳이란 걸 알게 된다.

127년 전 오랜 공도정책 끝에 개척민이 섬에 발을 디딘 이래 온 군민이 떨치고 일어났지만 아직도 일주도로를 갖추지 못할 만큼 울릉도의 지세는 험하다.

1963년 공사가 시작되어 지지부진하던 울릉도 일주도로는 1976년 중장비가 투입되면서 섬의 큰마을 들을 하나둘씩 이어놓기 시작했다. 울릉읍과 서면, 북면을 부분적으로 이어주던 길이 오랜 공사 끝에 2001년 하나의 길로 연결되면서 무공해의 섬 울릉도도 본격적인 자동차 교통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둘레 44.2㎞의 일주도로 중 북동쪽 4.4㎞ 구간은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10리 가까이 이어진 깎아지른 해안단애를 도저히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구간은 울릉도에서도 유일하게 태고의 바닷가 비경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울릉읍의 내수전 고갯마루에서 끊긴 찻길은 호젓한 오솔길로 변해 북면 석포마을로 이어진다. 울릉도의 서울이라고 할 도동 저동과 북면을 잇는 제일 가까운 통로인 산길은 해발 300~400m의 산중턱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험준한 길이다.

그 옛날 이 길을 다니던 섬 사람들에게는 고달프고 위험한 길이었을 터이지만 한짐 내려놓고 바라보면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길은 갖가지 낙엽수와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난대림이 뒤섞여 낮에도 어둑할 정도로 깊은 원시림 속으로 이어진다. 한쪽 편으론 낭떠러지 아래 탁 트인 동해가 고단한 나그네의 길동무가 되어 준다.

하지만 근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던 이 오지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울릉군과 국토해양부가 울릉도 일주도로를 국가지원지방도로 승격시키면서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 이 구간에 2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로공사를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길을 뚫는 작업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태고 이래 자연 그대로 간직되어온 비경이 망가지고 콘크리트 테가 둘러쳐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을 위해 작은 불편을 참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원시의 자연환경과 편리한 길 중에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자산일까….

                                                            2009. 08.22         < 문화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