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여성봉 산행 이야기..

2008. 2. 4. 11:56국내산행정보/....국내산행 후기

 

[도봉산인가? 오봉산인가?.....]

송추(松湫)......

처음에는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아 소나무 ‘송(松)’자와 가래나무‘추(楸)’자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사계절 내내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에 못‘추(湫)’자로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 송추는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와 신비로운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어 예로부터 신선들이 노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가 즐겨 찾는 도봉산은 우리나라에 더 없는 명산임에는 틀림없는 수려한 봉우리와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까지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등줄기의 핵을 이루었고, 그 줄기의 한곳인 함경북도의 추가령에서 뻗어 나온 한북정맥의 핵을 이루는 곳이 도봉산이다.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구별된 독립된 산이지만 북한산의 규모와 산세에 가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그 이름이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도봉산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산줄기를 정리한 산경표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산군에 속해있는 상장봉을 오히려 도봉산군으로 보거나 아니면 독립된 산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상장봉이 북한산의 한 봉우리로 불리지만 상장봉은 한북정맥의 줄기이고, 북한산은 상장봉에서 다시 뻗은 줄기임을 볼 때 도봉산의 한 봉우리로 보던지, 아니면 상장봉도 독립된 별도의 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글을 쓰는 글쓴이의 생각이다.

도봉산의 봉우리

 

그런데 우리가 산행을 한 오봉도 생각해볼 문제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봉산의 오봉으로 알고 있지만, 별개의 산으로 인정하여 오봉산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양주시청의 홈페이지에서는 도봉산자체를 오봉산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좀 믿기 어려운 억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도봉산과는 별도로 오봉자체만을 오봉산으로 부른다고 해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리학이나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본다면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리학을 전공한 것도 더더욱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곳의 산하를 찾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보면, 산 이름과 산줄기에 연관된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어떤 모산(母山)에 속한 봉우리는 대게 모산과 같은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 줄기의 맥이 다르면 별도의 산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강원도의 명산인 오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대산의 정상은 비로봉이지만,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 다섯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노인봉 역시 오대산 국립공원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노인봉은 누구나 별개의 산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노인봉, 동대산, 두로봉은 백두대간의 줄기로 상왕봉, 비로봉, 호령봉은 한강기맥의 줄기로 구분된다. 이런 이치로 볼 때 오대산의 구성요소인 두로봉이나 동대산은 오대산의 봉우리가 아니라 별개의 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상장봉은 북한산의 한 봉우리가 아니라 별개의 산이며, 양주시에서 주장하는 오봉산 역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짧은 소견이다.

 

[송추에서 시작한 원점화기 산행]

2008년 2월의 첫 일요일인 3일, 오봉산행을 위해 불광동 서부터미널로 갔다. 가입한지 얼마 안 된 소띠방 산행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나는 아는 얼굴이 없는 관계로 터미널에 도착하여 전화로 일행을 확인한다. 모두 모이고 시외버스를 이용해 송추로 이동을 하고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출발에 앞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산행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는다. 공지된 것처럼 송추남능선인 송추-여성봉-오봉으로 올라 주능선 자운봉 방향으로 진행하다 우측의 빠져 송추폭포-송추계곡-송추로

이어지는 원점회기 산행이다.

일요일 근교산행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겨울시즌은 눈꽃산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로 가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특히 경사진 결빙구간에는 여지없이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아이젠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인지 아이젠을 해도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정체는 당연한 것....

오봉의 모습

 

송추에서 50분 거리인 여성봉에 도착한다. 약간의 바람과 함께 온도가 조금 떨어진 것인지 밀려오는 추위로 윈드스토퍼 재킷을 꺼내 입는다.

이곳 역시 경사의 슬랩 구간인 여성봉 바위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많은 사람들로 여성봉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아래에서 기다린다.

자연의 신비함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여성봉....

그 적나라한 모습과 입으로 전해진 소문 덕에 등산을 한다면 누구나 한번은 이곳을 찾고 또 찾아오고 싶어 하는 도봉산의 명물인 셈이다.

 

무수한 웃음과 즐거움이 있는 여성봉을 지나 오봉에 올라선다.

원래 오봉은 워킹이나 리지보다는 암벽코스로 알려진 곳이다. 매우 특이하고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오봉은 완전히 별개의 바위들이 정상에 하나씩 있다.

이 바위들의 불안정한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다섯 형제의 전설을 간직한 오봉..... 재미삼아 오봉에 대한 얘기를 하나 해본다.

옛날 오봉산 아래의 장흥고을에 살았던 어떤 부자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다. 그러던 하루.... 이 고을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해 왔다.

그런대 새로 부임한 원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오형제가 모두 이 원님의 딸에게 모두 넋을 잃고 그 딸에게 장가들고 싶어 하자, 난처해진 원님은 산 위에 가장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한다.  이에 다섯 형제가 일제히 산위에 바위를 올려놓고, 이로 인해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 넷째 아들은 바위를 산 위에 올려놓지 못하였으므로 지금도 넷째 봉우리에는 바위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대부분이 믿기 어려운 점이 많은데, 이 전설 역시 그러한 것 같다. 그러나 오봉의 봉우리를 보면서 그 기이한 모습에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오봉산 아래의 꼭지바위

 (애기밥통으로 부르기도 함)

 

오봉을 출발하여 또 하나의 꼭지바위 아래서 점심식사를 한다.

이곳 말고 여성봉 아래에 꼭지바위가 있다. 애기밥통으로 부르기도 하는 꼭지바위는 여인네의 가슴과 흡사하게 생겼다.

송추계곡의 하신 길은 눈이 녹지 않은 상태였다.

뒹굴고, 넘어지면서 순간순간 카메라셔터가 눌러진다.

어린 시절 고향의 품이 이처럼 즐겁고 포근할까?

 

[좋은 친구들과의 첫만남....]

하산을 완료하고 옻닭으로 뒤풀이가 진행되었다. 두 명의 생일자를 위해 케익에 불이 켜지고, 처음이지만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또 다른 포근함이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스스럼없는 얘기가 통하니, 이것이 바로 동갑내기들이 모이는 이유인 것 같았다.

 

약관의 나이부터 산과 인연을 맺어, 오랜 세월을 산과 함께 살아오면서 수많은 산우들이나 선후배를 만나며 살아왔었다. 때로는 조용하게 뒤에서 표시나지 않는 산행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이드로 인솔을 책임지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산악회와도 인연을 맺기도 했었다.

2005년 카페가 아닌 특수집단의 친목산악회를 설립하고 운영에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이제 그 산악회가 완전한 괘도에 오르면서 지난 연말 그 산악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난 후 나에게 맞는 곳을 찾다가 소띠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빨리 이곳에서 산행을 하고 싶었지만 가입 한 달 만에 첫 산행을 한 것이었다.

인연이란 이렇게 시작하고, 그들과 맺은 소중함을 평생 놓지 않는 것으로 삼아야한다.

매주 이곳 산행만 참여하기 힘든 직업의 특성이 있기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여건이 되는 한 많은 시간을 이곳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

 

송추에서 공식적인 술자리를 마치고 연신내로 자리를 이동하여 맥주한잔으로 헤어지기 아쉬움을 달랬다. 처음 산행에 따뜻하게 맞이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번 오봉산행은 끝없는 기억으로 가슴에 남을 것이다.

친구들아 고맙다....

설 명절이 이제 3일만을 남겨두고 있어, 명절 전에는 산행이나 모임에 참석 할 시간이 없는데, 명절 즐겁게 지내고, 복 많이 받아라!!!

 

 

* 위에 피력한 의견은 개인 의견이므로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밝힘니다.

 

2008년 2월 4일

                         月下/崔乘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