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중국 리장, 나그네 발길 시간 속에 묶다(매일경제)

2007. 12. 2. 13:15중국/중국 서부 트레킹

해발 2500m 첩첩산중 고원지대, 800년 전 모습 그대로 조용히 시간을 지키며 흘러온 땅, 리장. 그 안에 들어서면 바람도 잠시 시간을 잊고 걸음을 멈춘다. 하루하루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바쁘게 뛰던 일상을 잠시 접고 리장이 주는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리장은 중국 소수민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윈난성 중에서도 서북부 고원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소읍이다. 이곳에는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는 고성이 시가지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성은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100여 채 모여 독특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성은 쓰팡제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는 교통 요충지다. 골목길마다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붉은 색 역암이 깔려 있다. 곳곳에 매달려 있는 홍등이 밤이 되면 불을 밝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고성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 눈길을 끄는 것은 수로다. 어느 거리, 어느 골목이나 빠짐 없이 수로가 지나고 있다. 문 앞까지 맑은 물이 흘러 마치 운하에 둘러싸인 마을 같다. 그래서 리장은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고성을 지을 때 수로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골목골목을 휘감아 도는 물줄기는 인근 옥룡설산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신선한 물이다. 이 맑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들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수로를 따라 총 300여 개 돌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와 수로, 나무와 산, 거리와 집들이 어우러진다.마을과 자연이 일체가 된 듯하다.

고성은 전체를 둘러보는 데만도 3일이 넘게 걸릴 정도로 넓다. 게다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자칫하다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어딜 가나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한 곳이기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주변에는 리장을 통치했던 무스투쓰의 건물인 무푸가 재현되어 있다.

리장 고성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만고루'다. 고성 한쪽 끝에 자리한 탑으로 쓰팡제에서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된다. 고성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흑룡담 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서는 호수의 맑은 물에 옥룡설산과 하늘이 비쳐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800년 동안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온 고성, 그곳에는 그들만의 종교를 믿고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음악을 즐기는 매력적인 소수민족 '나시족'이 세월을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다.

나시족 사회는 모계 중심이기 때문에 가사부터 대외적인 업무까지 모든 일을 여자가 도맡아 하고 남자들은 항상 어디선가 빈둥대고 있다. 이 때문에 양육권과 재산권도 모두 여성에게 있다. 천당으로 가는 길마저도 여자는 7계단만 오르면 되지만 남자는 9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들은 주로 동ㆍ은그릇 제작, 피혁, 방직, 양조업을 위주로 하는 전통 수공업과 상업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나시족은 독특한 상형문자 체계를 갖고 있다. 그들의 고유 종교인 동파교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했다고 해서 '동파문자'라 불린다. 동파문자는 사물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거나 일부 특징을 부각시켜 글자화한 것이다. 동물의 경우 말은 갈기, 돼지는 입, 호랑이는 얼룩무늬를 본떠 상형화했다. 이 때문에 언뜻 보기엔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워 담과 벽을 장식하기도 하고 문양처럼 기념품에 새겨넣기도 한다.

나시족은 대나무로 만든 죽필에 천연염료를 찍어 흙과 나무, 종이 등 천연재료 위에 동파문자를 썼다. 대부분 화려한 색을 사용해 예술성이 뛰어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만의 음악도 가지고 있다. '동파선인'이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나시족 악단이 고성 중심가 쓰팡제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시족 특유 전통음악으로 감화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요즘 젊은 나시족 중에는 이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없어서 3~5년 안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항공=리장 직항편이 없으므로 상하이 또는 쿤밍을 경유해야 한다. 국내선 이용하면 상하이~리장은 약 3시간40분, 쿤밍~리장은 40분 정도 소요된다.